막상 '다음날 구이린을 떠나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나니 좀 아쉬웠다. 숨막히는 풍경을 뒤로 한 채 부랴부랴 아래로 내려왔다. 중국스러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시지 하나를 사서 점심 대신으로 먹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여행 초반에는 중후반에 비해 무척 마음이 급했다. 한 달밖에 되지 않는 중국비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하나라도 더 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여행 후반에는 오히려 무척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다녔는데, 초반에는 무언가에 쫓기듯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소시지 하나로는 도저히 힘을 낼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근처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라 널따란 식당에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배가 고프니 어쩌겠는가. 용기 있게 들어가 메뉴판을 달라고 했다. 근데 이게 웬 일. 종업원은 족히 열은 되어 보이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구이린은 분명 관광도시. 내가 너무 관광과는 관련 없는 골목으로 다니나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영어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니...;;
영어 메뉴판도 없기에 그냥 한문이 적힌 메뉴판을 보고 무작정 음식을 골랐다. 가장 만만한 건 예를 들어 '우 牛'나 '반 飯' 정도의 한자. 대충 짐작으로 음식을 주문했다. 물론 여기에는 아주 쉽게 메뉴를 고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손짓 발짓 다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 앞에는 나를 원숭이 보듯 신기해 하는 열여 명의 종업원들이 늘어서 있었다.-_-;; 주문이 끝나고나니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근처 다른 테이블로 몰려가서는 각자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간만에 등산을 좀 해서 그런가 무척 꿀맛이었다. 기름진 볶음밥과 지글지글 타오르는 쇠고기볶음. 아, 생각난다. 먹고 싶다. 지금 시간은 새벽 1시 23분. 흐음...
그렇게 점심을 거나하게 먹은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걷다보니 또 어디에 있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항상 스스로가 길을 정말 잘 찾는다고 생각해왔는데 구이린에서는 이런 믿음이 산산조각 나버렸다.ㅜㅜ) 다시 버스를 탔다. 일단 금액이 저렴하니 안심이다. 한참을 가다보니 쌍탑이 보인다. 보이자마자 버스에서 내려 쌍탑 방향으로 걸어갔다.
일월쌍탑이라는 이름처럼 하나는 해를, 하나는 달을 상징한다. 하나는 금색의 구리로 되어 있고, 하나는 은색으로 되어 있었다.(은색은 성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잔잔한 호수에 내려앉은 쌍탑은 '이게 바로 중국!'이라는 느낌을 주는 건축물이었다. 켜켜이 쌓은 묵직한 탑, 그 정상에서 하늘을 찌를듯 솟아있는 첨탑. 탑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이 두 탑은 호수 아래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고 한다.
쌍탑을 뒤로 하고 내가 찾은 곳은 코끼리 바위. 코끼리 코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하여 이름이 코끼리 바위다. 이 곳은 쌍탑 바로 뒤편에 있는데 리강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사실 강변이기 때문에 강을 따라가다보면 바위를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입장료를 받기 위한 술수인가, 코끼리 바위가 보일만한 강변에는 빽빽하게 나무를 심어놓아 바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좀 괘씸하긴 하지만 일단 돈을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코끼리 코 모양의 바위가 한 눈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 깎인 흔적이 예사롭지 않다.
몇몇 관광객들의 새 '쇼'를 본 뒤 코끼리 바위 쪽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장권을 내고 들어와 코끼리 바위만 사진을 찍고 잠시 쉬어가기만 한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무조건 올라가고 보는 내가 아니던가. -_-; 오른편 길을 따라가다보니 코끼리 바위로 오를 수 있는 길이 나왔다.
코끼리 바위로 올라가다보니 입장권을 내고 들어왔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는 위의 사진처럼 대나무로 만든 관광용 뗏목이 많이 다닌다. 여기서 타는 뗏목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구간도 짧고 금액도 비싸다. 구이린의 진짜 풍경을 감상하며 배를 타고 싶다면 양수오나 싱핑으로 가야 한다.
또 한참을 코끼리 바위 위에서 서성였다. 때로는 바위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매료됐고, 때로는 발 밑의 이름모를 풀에 마음을 빼앗겼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추적추적 여름비가 내렸다.
'내일은 저 봉우리 곁으로 조금 더 다가가야지. 양수오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어야지...'
그리 상상하며 잠에 들었다.
다음 글에는 구이린 절경 중의 절경인 양수오. 자, 그 전에 염장샷 하나만 더 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