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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들과 댄스음악으로 편향된 방송 가요계에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는 무대! 진짜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

MBC가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내건 기치다.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가 재도전을 선택하고 이에 시청자들이 반기를 들자 MBC는 스스로 발목을 자르고 나섰다. 김영희 PD를 경질시키기로 한 것.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데 대해 분명 김영희 PD에게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단지 PD의 책임일 뿐일까.

<나는 가수다>는 이제 막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가수 윤종신이 트위터에 남긴 말처럼 모두들 ‘가혹한 기획’이라 생각했지만 첫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변했다. 이제 “응원한다”는 것. 왜 시청자들은 이 가혹한 프로그램을 응원한다고 했을까. 그것은 이 프로그램이 첫방송에서 ‘진짜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는 원칙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원칙에 감동한 시청자들은 <나는 가수다>를 기다렸고 응원했다.

하지만 불과 방송 3주 만에 이 프로그램은 좌초위기에 내몰렸다. 김건모의 재도전 수락으로 촉발된 위기는 김영희 PD 교체로 절정에 치달았다. 김건모 재도전 수락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이제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될까 우려하고 있다.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YB밴드의 1위, 김건모의 7위가 시사하는 건 무엇일까. 당초 프로그램 제작진과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에서는 가수의 가창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래 잘 하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한 것.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가수 윤도현은 7명의 가수 중에 가장 노래를 잘 하는 가수는 분명 아니다. 매니저인 김제동도 직접 윤도현에게 가장 노래를 못한다며 지적을 할 정도다. 하지만 윤도현은 당당히 첫 번째 미션에서 1위를 차지한다.

관객들이 바보라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관객들은 무엇에 끌려 윤도현을 1위로 이끌었을까.

한 사람은 틀릴 수 있지만 다수는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관객의 이 같은 평가는 <나는 가수다> 제작진도, 시청자들도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을 명확히 짚는다. 관객이 무대에 서는 가수에게 바란 건 ‘준비’와 ‘성의’였다는 것. 물론 도전하는 가수 7인은 모두 노력했고 준비했다. 하지만 관중석에서 관객이 느끼는 것은 다르다. 주어진 무대에서 가수가 어떤 모습으로 노래했느냐는 관객의 대답으로 바로 돌아온다. YB밴드는 실력이 달리고 대중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했기에 더욱 열심히 임했다. 그 결과 이들의 무대는 다른 이들의 무대보다 압도적이었고 무엇보다 ‘열심히 준비했다’는 느낌을 줬다. 관객들은 고스란히 그것을 보았고 느꼈고 그리고 평가했다.

반대로 김건모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지 못했다. 김건모는 노래를 잘 하는 가수였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노래에 완전히 몰입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마지막에는 노래와 맞지 않는 립스틱 퍼포먼스를 보였다. 이 진지하지 못한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망하게 했고 이는 그대로 평가에 드러났다. 이는 제작진도 가수도 미처 알지 못한 ‘진짜 관객이 진짜 가수를 평가하는 잣대’였다. 때문에 결과는 놀라웠고 충격적이었다.

원칙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원칙은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을 일컫는다. 그럼 규칙은 무엇일까.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 또는 제정된 질서를 말한다.

<나는 가수다>의 원칙은 무엇일까. MBC가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내건 기치가 바로 원칙이다. 진짜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는 것. 여기서 7위가 탈락을 한다는 건 규칙이 된다. 이건 원칙이 아닌 규칙이다. 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바뀔 수 없지만, 규칙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김건모의 재도전 결정은 원칙 위반이 아니라 규칙 위반이다. 규칙을 바꾼 건 제작진이다. 그렇다면 제작진은 왜 규칙을 바꿨을까. 당황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관객들이 가수들의 무대를 어떻게 감상하고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 어느 누구도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처음 하는 기획에, 처음 하는 평가였던 만큼 그 충격은 컸다. 윤도현은 관객들의 평가 잣대를 제대로 짚었고 김건모는 제대로 짚지 못했다. 때문에 실력이 팽팽한 가수들은 때로 1위를 하기도, 7위를 하기도 한다.

제작진이 김건모의 재도전 결정을 받아들인 것을 그저 규칙을 무시했다며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이 이뤄진 진짜 이유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제작진은 진짜 가수의 무대를 보이겠다는 원칙이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 규칙을 위배했다. 아니 변경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분개했다. 처음에는 서바이벌이라는 규칙이 너무 가혹하다고 비판하더니, 서바이벌의 규칙을 위배하자 시청자들이 먼저 나서서 분노했다.

<나는 가수다> 제작진은 기로에 서있다. 시청자의 비판을 받아들여 PD를 내쫓기로 한 MBC의 결정은 성급해 보인다. 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이고, 시청률이 프로그램 존폐의 최대변수라는 현실에서 보면 당연한 조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 시청자들이 원한 건, 진짜 가수를 보는 것이다. 꼴찌 가수가 탈락하는 건 진짜 가수를 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시청자들이 첫 번째 평가 결과를 뒤바꾼 프로그램에 반기를 들더라도 제작진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가혹한 기획이라 생각했던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제 응원한다고 마음을 바꾸게 한 건 제작진이다. 김건모의 재도전이 얼마나 더 가치 있는 무대를 펴는 원동력이 될지, 이 프로그램이 진짜 가수의 진짜 무대를 앞으로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보여줄지가 더 중요하다.

충분한 설명과 공감 없이 규칙을 위반한 건 분명 제작진의 잘못이다. 하지만 그 위반으로 인해 PD를 교체하고 프로그램을 좌초위기까지 내모는 건 원칙의 위배다. 이건 꼴찌를 탈락시킨다는 규칙을 위반한 것보다 더 큰 문제다.

MBC예능국장이 김영희 PD의 경질을 결정하면서 과연 <나는 가수다>의 프로그램 원칙을 고려했는지 의문이다. 원칙을 지키겠다는 원칙을 보여주면 시청자들은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 시청자들을 돌려놓는 건 원칙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제작진의 몫이다.

진짜 가수의 무대를 오래도록 보고 싶었던 시청자들의 기대는 프로그램의 진짜 원칙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에 이 문제의 실마리가 있다. MBC의 성숙한 판단과 제작진의 뼈를 깎는 노력, 시청자들의 따뜻한 시선을 기대한다.

Posted by 플라이티카